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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

by 일보전진일보후퇴 2026. 1. 2.

비키니의 역사는 기원전 56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 시대의 경쟁적인 운동 경기에서 비키니와 같은 옷을 입은 여성들을 묘사한 삽화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빌라 로마나 델 카살레이다. 1930년대 초반부터 이미 투피스 수영복을 입었던 여성들이 있었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비키니는 1946년 7월 5일에 처음 등장했는데, 프랑스의 기술자인 루이 레아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물자 배급으로 일부 영향을 받아 미셸린 베르나르디니가 모델로 출연한 현대 비키니를 선보였다. 레아르는 전후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진행되었던 비키니 환초의 이름을 따서 자신이 디자인한 옷에 이름을 붙였다. 프랑스의 여성들이 이 디자인을 반기는 한편, 로마 가톨릭교회, 일부 언론, 대중 대다수에서는 처음에 이 디자인이 다소 외설적이고 부도덕하다고 받아들였다. 1951년에 열린 제1회 미스 월드 미인 대회에서는 참가자들이 비키니를 입었지만, 이후의 모든 미인 대회에서 한동안 착용이 금지되었다. 1953년 칸 영화제 기간에는 프랑스의 여자 배우인 브리지트 바르도가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고 있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면서 주목을 받았다. 리타 헤이워스, 에바 가드너를 비롯한 다른 여자 배우들도 비키니를 입으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 초반에 이 디자인은 《플레이보이》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를 장식하면서 더욱 공신력을 갖게 되었다. 우르줄라 안드레스는 1962년에 개봉된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살인번호》에서 상징적인 하얀색 비키니를 입고 파도에서 나오는 모습을 선보이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라켈 웰치는 1966년에 개봉된 영화 《공룡 100만년》에서 사슴 가죽 비키니를 입고 등장해 세계적인 섹스 심볼로 떠올랐고, 1960년대를 대표하는 패션으로 회자되었다. 비키니는 점차 서양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패션 사학자 올리비에 사야르드는 전 세계적으로 비키니가 가장 사랑받는 여성 수영복이 된 이유에 대해 “패션이 아니라 여성이 가진 힘”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며, “수영복의 해방은 항상 여성의 해방과 연관되어 있다.”라고 덧붙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 비키니는 세계 각지에서 연간 8억 1,100만 미국 달러를 벌어들인 사업으로 자리매김했고, 비키니 왁싱, 일광욕과 같은 파생 서비스도 덩달아 성장했다. 1907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영 선수이자 연기자였던 애넷 켈러먼은 미국 보스턴 해변에서 목에서 발끝까지를 덮는 형태의 민소매 원피스 타이츠 수영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 수영복은 그녀가 잉글랜드에서 들여온 의상이었지만,[33] 1910년 무렵에는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여성 수영복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1943년에도 켈러먼의 수영복 사진은 품위에 어긋나다는 이유로 에스콰이어 대 워커 우체국장 사건(Esquire v. Walker, Postmaster General)에서 증거로 제출되었다. 그러나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에서는 1920년 6월(55권, 6호, 138쪽)에 "애넷 켈러먼의 수영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담하면서도 항상 세련된 아름다운 착용감을 자랑한다."라고 평가했다. 《하퍼스 바자》는 이듬해인 1921년 6월(54권, 2504권, 101쪽)에는 켈러먼의 수영복에 대해 "완벽한 착용감과 아름다운 유려한 선으로 유명하다."라고 덧붙였다. 1912년 스톡홀름 하계 올림픽에서 여자 수영 종목이 도입되었다. 1913년에는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인 칼 잰츤이 이 획기적인 사건에 영감을 받아 최초의 기능성 투피스 수영복을 만들었는데, 하의가 반바지 모양을 띠고 있고 짧은 소매가 달린 상의가 몸에 꼭 맞는 원피스처럼 연결된 것이 특징이었다.1912년에 개봉된 《워터 님프》(The Water Nymph)와 같은 미국의 무성 영화에서는 메이블 노먼드가 노출이 심한 옷차림으로 등장했고, 맥 세네트는 1915년부터 1929년 사이에 과감한 옷차림을 한 세네트의 목욕하는 미녀들(Sennett Bathing Beauties)이 등장하는 무성 영화를 제작했다. 수영복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스윔수트'(swimsuit)는 1915년에 미국의 스웨터 제조 기업인 잰츤 니팅 밀스(Jantzen Knitting Mills)가 레드 다이빙 걸(Red Diving Girl)이라는 수영복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만들어졌다.1916년에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첫 연례 수영복의 날은 수영복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였다.초기 수영복 디자인이었던 수영복 앞치마는 1918년경에 사라지고, 반바지를 덮는 튜닉한 디자인만이 남게 되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들어서 사람들은 목욕탕과 온천에서 '물놀이'보다는 '일광욕'을 즐기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수영복 디자인도 기능적인 측면에서 벗어나 보다 장식적인 요소를 더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레이온은 1920년대에 타이트한 핏의 수영복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지만,특히 젖은 상태에서는 내구성이 떨어져 문제가 되었고,그 외에도 저지와 견섬유(실크)도 때때로 수영복 제작에 이용되었다.1920년대에 벌레스크와 보드빌 공연자들은 투피스를 입었다. 1929년 소련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Man with a Movie Camera)에서는 복부를 드러낸 초기형 투피스 수영복을 입은 러시아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일부는 상의를 입지 않은 모습도 보여주었다. 1930년대 독일의 휴가객들을 촬영한 영화에서는 투피스를 입은 여성들이 등장한다.멕시코의 여자 배우인 돌로레스 델 리오(Dolores del Río)는 1933년 미국 영화 《플라잉 다운 투 리오》(Flying Down to Rio)에서 처음으로 여성용 투피스 수영복을 입고 등장한 최초의 스타 배우였다.